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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이름의 낙원
2003년 01월28일 17시 02분에 작성하셨습니다.
휴일 오후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다.
이 고즈넉한 시간들이 일상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낙원이리라.
일상이 받치고 있는 구심력은 삶을 더욱 단단하게 구조화 시킬 것이며,
반면 일상 속에 갇혀 버린 삶을 숨통 트이게 만드는 원심력의 근원은
불확실한 꿈들과 희망, 슬쩍 한발을 내딛기도 하는 일탈의 시간들일 것이다.
에덴동산, 샹그릴라, 유토피아, 무릉도원...
낙원에서는 먹고 자고 기껏 바라보는 일이 전부이다.
배 부르고 등 따신 낙원이라는 이름의 에덴동산, 모험도 위험도 함정도 위기도 없는,
무사안일한 낙원을 두고 누가 이상향이라고 했을까?
낙원이란 무사고와 무모험과 무위험과 무짜릿의 일상이 농축된 상태라고 그 누가 바보처럼 말했을까?
아마도 사는 것이 너무 힘에 겨워 한번 해 본 소리였을 것이다.
시기나 질투 속에서 달작지근한 애착과 열정은 묻어난다.
위험을 지척에 둔 일탈에서 솟구치는 전율적 쾌감이 있고
위험과 근접한 상태에서 오는 이 전율감은 맹물 같은 우리의 삶에 건더기를 제공한다.
두고두고 꺼내 쓸 만큼 진저리 나게 넘쳐 나는 근심은 우리를 비로소 안식하게 만든다.
0.1%의 양념처럼 약간의 일탈을 버무린 그만한 삶!
이데올로기, 정치, 경제, 또는 문학이나 철학, 예술을 하자는 것은 결국
"밥 먹고 똥 싸고 번식하는" 이것을 좀 폼 나게 하자는 말이다.
그렇다. 그만하게 살아낸다는 것은 생사를 건 날 벼린 이데올로기이고,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와 경제이며,
소설보다 더 다양한 복선이 깔린 수준 높은 문학이며,
형이상학적인 예술이고 철학이다.
면벽수도 보다 세상에서 그만하게 살아내는 것이 더 어려운 법.
TV에 나오는 '별난 사람들 시리즈' 는 그 의외성으로 우리를 감탄하게 만들지만
별나게 사는 일은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오히려 쉬운 일이지 않은가.
별나게 살기로 작정한다면 앞뒤 안 재고 마음 가는 대로 핸들만 꺾으면 되는 일인 것을.
이만큼 이골이 나게 살아왔음에도 그만하게 살아가는 일이 나는 무척 버겁다.
정돈된 내 삶을 마구 엉클어 놓고 미친년처럼 소리 지르고 싶을 만큼
일상의 무게가, 위치가, 존재감이, 예속이, 의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남들도 다 천연스럽게 살고 있는데...
레더먼의 말처럼 원자는 99.99% 이상이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누구든지 벽을 뚫고 지나가지는 못하는 법이다.
여전히 일상은 벽처럼 오만불손하게 내 앞을 가로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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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